줄거리
2016년 개봉한 영화 어카운턴트(The Accountant)는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주인공 ‘크리스찬 울프’를 중심으로, 천재적인 수학 능력과 정밀한 전투 기술을 지닌 남자의 이중적인 삶을 다룬 액션 스릴러다. 회계사로 위장한 그는 사실 글로벌 범죄 조직의 돈을 관리하며, 필요시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킬러다. 이 영화는 자폐 캐릭터에 대한 기존 고정관념을 깨면서도, 인간 내면의 정의감, 고독, 그리고 생존을 통찰력 있게 그려낸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줄거리, 사회적 배경, 그리고 영화가 던지는 의미를 중심으로 작품을 해석한다. 크리스찬 울프는 어릴 때부터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를 가지고 있었으며, 특정 자극에 극도로 민감하고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수학과 패턴 인식에 있어서는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군사적 교육 아래 자폐적 성향을 억누르고 생존 기술을 익히며 성장한 그는, 성인이 된 후 회계사라는 외형을 띠고 있으나 실제로는 국제 범죄조직의 돈을 세탁해주는 전문 회계사이자, 임무에 따라 타깃을 제거하는 킬러로 활동한다. 그는 수학적 직관과 철저한 논리로 기업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불법 행위의 단서를 찾아낸다. 동시에 냉철한 판단력과 신체 훈련으로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켜내는 능력을 갖췄다. 크리스찬은 사회적 감정 교류에 서툴지만, 일정한 규칙과 루틴을 통해 자신을 통제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설정은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며, 단순히 ‘이해받지 못한 천재’가 아니라 감정과 행동의 차이를 품은 독립된 주체로 그려진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장애를 드라마적 요소로 과잉 소비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현실적인 제약과 그로 인한 삶의 선택지를 치밀하게 묘사한다. 크리스찬은 세상과 어울리지는 못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실을 추적하고 정의를 실현하려 한다. 이는 그가 단순한 고용 킬러가 아닌 ‘내면의 윤리’를 지닌 인물로 이해되도록 만든다.
사회적배경
크리스찬의 성장 과정에는 군사적 논리가 깊숙이 개입돼 있다. 그의 아버지는 자폐를 가진 아들을 약자로 두지 않기 위해 혹독한 군사 훈련과 세계 각지의 생존 훈련을 강요했다. 이는 영화에서 ‘정상 사회’가 장애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조를 상징하며, 결국 한 개인이 감정 표현보다 생존 능력을 우선시하도록 만든 미국식 극단주의 교육의 단면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크리스찬은 다양한 무기, 암호 해독 능력, 그리고 회계지식을 바탕으로 국제 조직과 미국 정보기관 사이에서 오가는 인물이다. 그는 미국 재무부의 불법 자금 추적 부서와도 얽히게 되며, 정부조차 접근하기 힘든 ‘시스템 바깥’의 인물로 설정된다. 이는 개인의 능력이 국가 권력 이상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위험성과 동시에, 시스템이 포용하지 못한 천재의 사회적 소외를 동시에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크리스찬을 단순한 범죄자가 아닌 일종의 ‘정의의 복수자’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그는 부패한 기업을 응징하거나, 피해자를 도우며 개인적 윤리에 따라 행동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제도와 윤리가 불일치하는 현실을 꼬집으며, ‘정의’가 반드시 제도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영화의 또 하나의 핵심은 ‘감정 표현의 가능성’이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크리스찬은 감정 전달이 익숙하지 않지만, 내부적으로는 윤리와 감정의 질서를 명확히 갖고 있다. 회계 감사 중 만난 동료 다나와의 관계, 동생 브락스톤과의 대립 구조는 그의 내면에 자리잡은 ‘연결에 대한 욕망’과 ‘관계의 회복’을 보여주는 장치다. 다나는 크리스찬과의 대화를 통해 그가 단순히 비인간적인 킬러가 아님을 알게 되고, 크리스찬은 그녀의 존재를 통해 점점 감정을 외부로 표현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 관계는 그가 단절된 삶 속에서도 감정적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메시지를 상징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크리스찬이 자신의 동생과 마지막에 대면하는 장면이다. 같은 훈련을 받았으나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형제는 결국 총을 겨누는 입장이 되지만, 그 순간 서로를 이해하며 ‘가족’이라는 정체성으로 화해의 감정을 나눈다. 이는 단순한 액션 영화에서 보기 드문 정서적 깊이를 제공하며, 인간성 회복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결국, 어카운턴트는 자폐, 고립, 폭력, 정의라는 복잡한 주제를 통합하며, 우리가 흔히 정의라고 여기는 개념의 경계를 다시 묻는다. 고립된 천재가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인간적인 고뇌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진지하게 그려낸 영화다.
총평
어카운턴트는 자폐 스펙트럼 캐릭터를 단순히 ‘특이한 능력자’로 소비하지 않고, 사회와의 갈등, 내면의 윤리, 관계의 회복까지 통합한 서사를 완성도 있게 담아낸 작품이다. 액션과 스릴러 장르의 재미는 물론, 개인의 정체성과 정의감에 대한 철학적 질문까지 던지는 이 영화는,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깊이 있는 영화다. 감정과 논리의 경계에 선 주인공의 삶을 통해 현대 사회의 의미를 돌아보고 싶다면, 이 작품은 반드시 감상해볼 가치가 있다.